예전에는 음악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할 거리가 많지 않았다. 불법복제물에 대한 훈계나 경고 같은 것이야 있었겠지만 어쨌든 테잎 아니면 바이닐이이었으니. 그러나, 시디가 등장하고, 시디를 많이 팔고 싶은 업계에서 바이닐을 폄하하기 시작하면서 포맷에 대한 얘기들이 시작된다. 혼식을 위해 쌀을 무슨 불량식품인양 취급하던 오래전 정부 캠페인하고 비슷한 톤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디와 비교했을 때 장점이 전혀 없다고 말하며) 바이닐/엘피를 더 이상 섭취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 덕택인지 시디는 90년대를 지배했고, 2000년대 초까지 이런 상황은 지속되는 듯 했으나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디지털 음원, MP3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사실 디지털 음원이 시디처럼 돈이 되는 비즈니스였다면 업계는 다같이 시디는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합창을 하며 마케팅을 했을 것이다. 시디가 바이닐을 무찌르고 등장할 때 내세웠던 장점 중 하나인 휴대성 면에서 음원은 월등히 앞서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음반사들이 시디를 사달라고 호소하기도 했고, 좋아하는 음악가를 후원하기 위해선 시디를 사서 듣는 것이 최고다라는 얘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엠피 쓰리로 음악을 들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얘기까지 나오게 된다. 디지털 음원이 임가공비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큰 장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음악계의 수익성을 악화시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시디가 대세였던 시절만큼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좋아서 듣는 것이 음악인데, 그 음악을 구매하는데 대해서 굉장히 복잡한 철학이나 경제적 역학 관계에 대한 얘깃거리들이 어느날 갑자기 쏟아져 나왔으니까.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대한민국 정부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화부(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음원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물론 불법 서비스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섰던 것이지만, 그 역할이 지나쳤고 그 통제가 아직까지 지속된다는 건 큰 문제다.
합법화된 디지털 서비스가 보편화된 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스트리밍의 시대로 흘러간다. 과거 냅스터나 소리바다 같은 서비스에 대해 음악산업이나 음악가들이 가했던 비판이 반복된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비난하는 음악가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유사한 말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Dressed-up Piracy"같은. 이 "합법적 해적행위"에 관한 비판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면 "음악을 공짜"로 만들고 있다는 결말로 이어진다. '그 많은 음악을 듣는데 10달러라니, 아니, 혹은 그냥 광고를 봐주는 조건으로 이것들을 무료로 듣다니.... 음악을 죽이는 행위다.' 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서구의 얘기다. 국내의 상황은 이것보다 더 좋지 못하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덕택(?)에 우리는 한 달에 3000원 정도만 있으면 거의 모든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다. Ad-supported 모델, 즉 사실상의 무료 스트리밍이 없다고는 해도 거의 모든 음원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가 열려 있다. 사실 3천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승인해 주고, 무료로 음악을 트는 공중파 채널들에겐 헐값의 저작권료를 받으면서 돈을 미리 지불하겠다는 삼성의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에 대해 제동을 거는 음저협의 입장은 이율배반적이다. 이미 음악을 거의 공짜 수준으로 소비할 수 있게끔 모든 걸 용인해 놓구선 기업에서 돈을 미리 지불하는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는 음악을 공짜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안된다고 말한다.
한국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이닐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거나, 혹은 그것을 사는 것을 많은 사람들을 대단히 의아하고 특별하게 받아 들인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바이닐을 생각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특별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취재를 했는데, 그에 대한 주된 해석은 결국 '아날로그 감성' 같은 단어로 수렴된다. 디지털 시대에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사람들이나 굳이 전시회에 돈을 지불하고 가서 그림을 보고 심지어 도록까지 사오는 사람들에게 '아날로그 감성' 같은 단어를 잘 쓰지 않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이 된다.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런 사실들을 떠올려보면 아마 이것은 '골동품을 사는 마음'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추억, 노스탤지어, 향수... 이런 단어들이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제목 뒤에 보통 따라오니까 그건 거의 맞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의 바이닐 시장은 집계가 불가능하지만, 집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작다. 전체 음악 시장이 마포구 면적이라면 바이닐 시장은 김밥레코즈 매장 면적 정도 될 것이니까. 그나마 서울레코드페어 같은 행사들이 좀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의 시장이 이 정도니까 그 전의 시장은 조금 더 작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사이즈에서 증감을 얘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단지, (아날로그 감성이나 향수 같은 단어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바이닐을 구매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가 바이닐을 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대단히 특이하게 받아 들이고 있고, 때문에 이것이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 들여지는 것 같다. 거의 음악이 공짜인 한국 시장에서 그래도 평균 2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살 수 있는 바이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분명 뉴스거리가 될만하다. 이런 뉴스가 갑자기 유통되다 보니, 기존에 바이닐을 사던 사람들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고, 음반이라는 걸 별로 사 본 적이 없는 이들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왜 사람들이 바이닐을 사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고 분석하고 싶어하는 건 알겠는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취재 없이, 애초부터 결론을 정해 놓거나 혹은 거기에 맞춰 듣고 싶어하는 답들을 따옴표 안에 넣어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래서 아날로그 감성 같은 망측한 단어들이 헤드라인으로 등장하고, 레코드의 사운드가 종종 신격화되며, 이와는 반대로 레코드를 사는 사람들을 (그저 과시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폄하하는 경우가 생긴다. 거기에, 구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뉴스가 나오면 각각의 철학을 덧붙여 댓글을 달고 있다. 음악을 듣겠다는데, 좋아하는 걸 좀 사겠다는데 온갖 논리와 욕망에 관한 철학, 신화화 내지는 비하가 넘쳐나고 있다.
매장에서의 경험(혹은 구매자들의 얘기를 들어본 경험)에 근거하면 사람들이 레코드를 사는 이유가 때때로 생각보다 훨씬 복잡다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패키지 모으는 걸 좋아하는데 시디는 비싸고 시디보다 상대적으로 싼 중고 엘피들을 중심으로 모으는 사람, 예전 흑인 음악을 주로 듣는데 시디나 다운로드로는 구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레코드를 찾아 듣는 사람, 몇몇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그래픽 디자인 때문에 사는 사람, 재즈를 주로 듣는데 잡음이 조금씩 섞어 있는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 찰리 브라운에 관련된 것들을 모으는 사람, 일렉트로닉을 바이닐을 통해 들을 때 더 좋게 느끼는 사람, 특정 아티스트의 모든 포맷을 다 사는 사람, 휴대용 턴테이블로 바깥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은 사람... 이를테면, 99가지가 넘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다채로운 이유를 갖고 있지는 않다. 나처럼 좀 더 단순한 이유로 바이닐을 사는 사람도 있다. 포맷을 특별히 따지지 않고 음악을 듣는 편인데 시디에 대해선 싫증이 났고, 스트리밍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레코드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바이닐로 나오지 않는 음악들이 여전히 많으니까 시디도 종종 사고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겠다 싶은 음악들은 그냥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로 만족하기도 한다. 포맷에 대한 철학이나 생각 같은 것은 없고, 레코드를 사야 좋아하는 음악가에게 더 도움이 될거란 사려 깊은 생각 같은 건 없다. 희귀한 레코드를 되팔아서 돈을 벌어보겠단 야망 같은 것도 없다. 레코드를 구매하게 되면서 생긴 경험상의 장점들이 레코드를 점점 더 사게 만들 뿐이다.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좀 더 많은 음악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레게나 70~80년대 소울/훵크 같은 음악들은 레코드로 들을 수 있는 소스가 훨씬 많고, 시디에 비하면 가격이 훨씬 나은 경우도 많다. 레코드로 음악을 들을 때 좀 더 집중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 사운드가 주는 장점도 아주 없지는 않다. 물론 음악(가)에 대해 숭고한 마음이 든다거나, 음악이 훨씬 더 근사하게 들린다거나.. 이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대량 생산된 사무용품 같이 생긴 시디를 보다가 큼직한 레코드의 디자인을 보면 같은 값이면 바이닐이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경험치가 쌓이고 이에 대한 몇 가지 장점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음악을 소비한다. 얼마전 컨퍼런스에서 만난 외국인 프로듀서는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데 만족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음반은 잘 안사는데 공연에 많은 돈을 쓰기도 하고, 또 나같은 사람들은 공연과 음반 모두에 돈을 쓴다. 제각각이다. 여기에 대해 크게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대부분 각자 경험을 토대로 거기에 충실한 소비를 하는 것이니까. 경제적 이유도 포함이 될 것이다. 공연장에 가는 것과 음반을 사는 것은 돈이 좀 많이 드는 일이니까, 경제적 처지와 자신의 욕망이 저울질되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돌이켜 보면, 음반이나 공연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이 부족했던 순간은 늘 많았다. 그럴 때마다 다른 지출을 줄이면서 공연과 레코드를 샀었는데, 여기에는 철학적인 이유나 원칙 같은 것이 없었다. 늘 음악을 좋아해 왔고 음반 구매나 공연 관람 같은 경험을 통해 지불한만큼(혹은 그 이상의) 만족을 느껴왔기 때문에 돈이 있으나 없으나 지속적으로, 당시 형편에 맞춰 지출을 해온 것이다. 소비에는 그만한 이유가 따른다. 거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1000원을 냈든, 만원을 냈든, 혹은 10만원을 냈든 그것이 그 이상의 가치나 경험이나 감흥을 줬다면 계속 구매를 하게 되는 것이다. 5천원을 내면 먹을 수 있는 밥집과 2만원을 내야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밥집이 공존하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2만원을 내고 먹어야 하는 밥집은 더 싼 밥집 때문에 망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예측하는 건 정녕 무의미하다.
미국 시장에는 (덧붙여 영국 시장에까지도) 확실히 바이닐 붐이 불고 있다. 공장은 풀가동을 해도 수요를 못 따라가고, 레이블들은 공장에 발주를 넣어 물건을 받기까지 보통 2~3달을 기다려야 하고, 3000장 정도 찍는 한정반은 대중들이 잘 모르는 독립 음악가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어렵지않게 소진된다. 기존 공장은 설비를 증설하고, 새로운 공장을 차리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50센트짜리 중고 레코드도 있고, 50달러짜리 턴테이블도 많기 때문에 새로운 포맷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장벽 자체도 그리 높지 않다. 새로 나오는 앨범들은 대부분 엠피 쓰리와 바이닐이 같은 날 발매되고, 우리로 따지면 시디 가격 정도인 12~18달러 사이의 새 바이닐이 주류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30~40프로씩 성장하는 기적적인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공장도 없고 (하나가 있지만 없는 것과 같다.), 새로 나오는 엘피와 리이슈들은 비싸고, 괜찮은 중고 레코드는 터무니 없이 비싸며, 옛날 엘피들은 귀하다. 80년대에 쏟아져 나온 국산 레코드들은 사운드에 대한 장점도 적다. 중저가 턴테이블을 파는 오프라인 매장은 거의 없으며, 괜찮은 턴테이블을 사려면 대부분 구매 대행 서비스에 의존하거나 해외 직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 훈수 두는 사람들만 많다.
이런 것들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장벽 때문에 설사 누군가가 바이닐이 대유행이라고 선전하더라도 쉽사리 바이닐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는 그리 많지는 않다. 레코드페어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지만, 이 행사가 자리 잡는데 최소 5년 이상 걸린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바이닐 붐이 있지 않냐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수요가 적고, 어쨌든 만든 건 다 팔아야 하니까 소량 한정반에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국내 레이블들은 장사를 한다. 그냥 일반 공장에서 제작하고 변변치 않은 패키지를 만들어 놓고서는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붙여서 파는 레코드도 종종 나온다. 거기에 갖다 붙이는 홍보 문구들이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체감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답답해서 작업실로 얻은 공간에다 바이닐을 파는 매장을 냈다. 일종의 자급자족을 위한 텃밭이고, 레코드를 좋아하지만 비싸게 사야 하는 사람들한테 도움도 주고 나도 도움을 얻고 그러기 위한 방편이었다.
예스24 같은 온라인 매장은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한정 수량+독점 판매 같은 것에 주력하는데, 이것도 국내 시장이 레코드 붐을 맞이하고 있다는 분석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현상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현재로썬 대중 가수/레이블들이 좀 더 많은 수량의 레코드를 좀 더 낮은 가격에 생산/판매하거나, 독립 레이블들이 자신들이 내세우고자 하는 새로운 아이템을 레코드로 만들어 레코드에 주력하는 독립 매장을 상대로 홍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게 보인다. 아마존 같은 대형 사이트가 레코드 붐에 승차하기 시작한 것은 (오프라인 중심의) 독립 레코드 매장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레코드스토어데이가 자리를 잡은 지 4~5년이 흐른 다음이었고, 여전히 레코드는 독립 매장에서 더 많이 소비된다.
(아마존은 매년 자신들의 바이닐 판매량이 급증하다고 있다고 발표 하지만 실제 바이닐이 얼마나 판매되었는지에 대해선 늘 입을 다물고 있다. 반면, 레코드스토어데이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러프 트레이드는 뉴욕에 대형 바이닐 매장을 냈다.)
레코드 문화는 포맷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보다 (레코드에 대한)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에서도 이 문화가 새로운 세대에게 전파되는 데 걸린 시간은 꽤 길었고, 이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에겐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유명인이 바이닐을 사서 들으면 좋다고 얘기한다고, 친구 인스타그램에 멋진 바이닐 사진이 올라왔다고 해서 당장 내일 바이닐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 명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섣불리 새로운 소비를 시작하지 않는다.
작게나마 점진적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취향을 갖춘 독립 매장들이 좀 더 생겨나고, 독립 음악가들이 레코드를 스스로 찍고 판매할 수 있는 수요와 루트가 마련되기 시작한 다음에 레코드나 레코드 붐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지금은 소비하는 사람은 적은데 말만 많아서 오히려 시장을 넓히는데 역효과만 주는 것 같다. 레코드를 비싸게 팔아서 잠시 수익을 챙겨보고자 하는 장사아치들만 늘어나고, 기존에 레코드를 사던 사람들에게도 괜한 물음표만 생겨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리공학과 교수님들이 엘피 소리가 따뜻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맞는 얘기인지, 디지털 음원을 레코드로 제작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들 하던데 왜 그런지...등등의 질문이다. 소리는 기계가 그려주는 그래프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느끼는 것이라는 건 잘 아실 것이다. 그리고 레코드는 소리가 전부가 아니다. 내 생각에 레코드 매력의 절반은 패키지다. 결국 사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얘기다. 굳이 초보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퍼블릭 도메인 음원을 리핑해서 판매하는 레코드 레이블이 붙여 놓는 180그램 오디오화일/ 리미티드 에디션 스티커가 왜 아무 의미가 없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거나 , 똑같은 바이닐을 15천원에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굳이 거기서 3만원을 주고 사지 말라고 알려주거나, 특정 회사 턴테이블은 영 품질이 낮고 특정 레이블에서 나온 바이닐은 부틀렉이니까 주의하라고 말해주거나... 그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바이닐을 종종 사고 있는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음반을 사는 걸 좋아하는데 음악은 주로 밖에서 듣는 편이다. 그런데 시디는 리핑을 해야 하니까 불편하다. 요즘 바이닐은 다운로드 코드도 제공해 주고 집에서(턴테이블로) 들으면서 리핑도 할 수 있으니까 편하다." 그렇게 불편하다고 말하는 바이닐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바이닐이 새롭기 때문에 구매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이닐은 그들에게 기존에 접하던 매체와는 다른, 신문물이거나 아주 독특한 매체다. 아날로그 감성 같은 단어는 21세기에 새마을 운동을 외치는 이들한테나 갖다 줘야 할 것이다.
어떤 손님이 매장에 레코드를 들고 와서 교환을 해달라고 말했다. "제가 이런 음악을 많이 듣는데 이 레코드는 잡음이 거슬려서 못 듣겠어요" 그 분이 주로 듣는 음악은 비트가 강하지 않은 일렉트로닉이나 엠비언트 같은 음악이었는데, 그 레코드에서 나오는 잡음은 (개인적으로 듣기엔) 일반적으로 곡과 곡 사이에 들을 수 있는 레코드의 잡음 수준이었다. 레코드를 들어본 내가 말했다. "만약 이런 음악을 계속 들으신다면 바이닐을 고집하시진 않는게 좋겠어요. 이런 정도 잡음은 레코드에선 흔하거든요." 이런 예민한 귀를 가진 분들께는 고음질 디지털 화일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요즘 바이닐 중엔 고음질 화일 다운로드 링크를 제공해 주는 것들도 있다. 시디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해줄 참이었다. 하지만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네, 저도 이런 단점은 잘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코드로 듣는게 더 좋아요." 여기서 더 무슨 얘기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인가.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품질이 낮고 비싼 파스타도 있으니 먹지 말라고 얘기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짜장면이 더 좋다고 우기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바이닐, 레코드에는 99가지 이상의 장점과 99가지 이상의 단점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시디도, MP3도, 혹은 더 나은 음질의 디지털 포맷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 사진을 크게 볼 수 있어서 바이닐이 좋을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오빠 음악을 전화기에서 언제든 들을 수 있어서 엠피 쓰리가 더 좋을 수도 있으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제공하는 바이닐+다운로드가 어떤 사람에겐 최고일 수도 있으며, 그냥 스트리밍으로 듣고 오빠 사진을 따로 사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3000원을 내고 3만원어치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고, 30만원을 지불하고 300만원어치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본인이 느끼는 가치다. 누가 더 바보이고, 누가 더 속물이고, 누가 더 허세인지, 누가 더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는지, 누가 더 음악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 어떤 포맷이 더 우월한지에 대해서 그래프나 도표를 그려 말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사업가들이 더 싸고 더 편하게 음악을 듣는 비즈니스를 끊임 없이 개발해 오고 있지만, 레코드는 70년 이상을 생존해 왔고 디지털 시대에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매년 기록적인 성장을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 포맷이 생존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누군가 쉽게 단정하기 힘든 물체다. 나도 가끔 바이닐에 대해서 이런 저런 글을 쓰고 조언 아닌 조언들도 하지만,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건 지난 몇 년간 산업이 알려주는 통계 정도 밖에는 없다. 실은 음악이 그런 존재다. 모두가 공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더라도 돈을 주고 사게 만드는 존재. 그것이 음악의 가치다. 그건 절대 변할 수가 없다.
바이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얘기는 그저 이 정도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이 정도 얘기를 한다. 바이닐을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한 번 정도 경험해 볼만한 가치는 있다는 정도. 경험한 다음 그걸로 음악을 듣게 되든, 아니면 나와는 안 맞는 매체라고 생각하든 어쨌든 모든건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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